2011년 12월 16일, 서울시의회에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안’을 찬성하는 의원들이 수정동의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주민발의 원안에 있던 소수자학생 권리보장 조항에서 ‘성소수자 학생’만 삭제되었다. 이에 대해 내가 항의하자, 한 의원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소수자가 들어가면 조례가 통과를 못한다. 조례가 보류되거나 부결돼도 괜찮냐”

그 의원의 말은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당시 서울시 교육위원들은 매일 400-500통의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한다는 동성애혐오 문자와 협박 전화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구나 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이 이번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한다면, 2012년 총선 정국 때문에 사실상 제정이 무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동성애자는 정신병자”라는 노골적인 혐오의 말들보다, 진보입법에서조차 성소수자의 존재를 걸림돌로 여기게 된 상황이 비수가 되어, 울컥 눈물이 나고 말았다.

학생인권조례 반대단체, 성소수자 혐오를 악의적으로 조장하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은 서울시민들이 주민 발의한 조례안이었다. 앞서 제정된 광주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와 다른 점이다. 청소년활동가를 포함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에서 2010년 7월부터 조례 제정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여, 주민발의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필사적으로 총 97,702명의 유효서명을 확보하여 주민발의 청구한 조례안이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는 친환경 무상급식과 더불어, 진보교육의 핵심적인 의제이자 공약이었다.

하지만, 보수단체와 보수성향의 주류언론들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고, 성소수자 혐오를 악의적으로 조장하였다. 서울시 교육청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과정과 곽노현 교육감의 선거법위반 사건을 겪으며 정치적 부담을 느꼈고, ‘동성애 논란’을 회피하려고 초안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 ‘성적지향’을 삭제하였다. 주민 발의로 상정된 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도 서울시의회 교육위 상임위 통과에도 난항을 겪으며, 원안의 내용이 삭제되거나 단서조항이 추가되는 등 대폭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특정 소수자집단의 청소년을 배제한 ‘정치적’ 결정은 학생‘인권’조례의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이라는 연대 네트워크가 긴급하게 결성이 되었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 전화나 이메일,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항의 의견을 표시했다.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만약 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의 차별금지조항이 폭력적인 성소수자혐오 주장 때문에 수정된다면, 앞으로 있을 모든 차별금지입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우려했다.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활동가들은 여러 고민 끝에, 이러한 절박함을 드러내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자고 결의했다.

성소수자들, 서울시의회를 점거하다

2011년 12월 14일, 성소수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서울특별시의회별관을 점거하고 시위에 돌입하였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 역사에서 성소수자들이 입법기관을 점거하고 시위에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청소년을 포함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농성장을 지키러 모여 들었고, 많은 단체들이 지지방문과 지지성명을 내고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점거시위를 시작하고 가까이서 보니, 서울시의회의 내부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한다는 의원들의 인권의식은 천박한 수준이었다. 성소수자 공동행동 활동가들은, 2007년 차별금지법 이후 쌓아온 운동의 성과와 자원들을 농성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최대한 활용하였다. 외국의 주요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반인권적인 상황을 알리고, 국제연대를 조직하였다. 유엔 산하의 국제인권조약기구인 아동권리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사회권위원회 등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성적지향’을 명시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들을 인용한 의견서를 만들어 의원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2007년 차별금지법 사태이후 NGO 단체들이 국제 활동을 통해 얻은 내용들이었다.

학생인권조례 서울시의회를 통과하다!

성소수자들의 적극적 활동으로, 논란이 되었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출산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조항이 주민발의 원안대로 서울시의회를 통과하였다. 농성장에서 모니터를 통해 본회의 회의과정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은, 학생인권조례 찬반토론과정을 감명 깊게 지켜봤다. 특히, 김형태 교육의원은,
기독교인인 한 사람으로서 저는 그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이 땅에 지금 살아 계시다면 과연 그분이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라고 하실까, 그들을 향해서 돌을 던지라고 하실까. 적어도 제가 믿고 제가 아는 예수님은 분명히 그분까지도, 그들까지도 존중하고 배려할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성소수자 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또한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차별을, 특별히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거부합니다. 문화적인 태도와 보편 인권이 대립할 때는 보편적 인권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합니다.”라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메시지를 인용하며 찬성토론을 마쳤다.

한국 역사에서 입법기관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의 인권이 쟁점이 되어 공식적으로 논의가 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고, 입법자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안은 표결결과, 재석 86명 중 찬성 54명, 반대 28명, 기권 4명으로 서울시의회에서 가결이 되었다. 그 순간 농성장에 있던 성소수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환호를 지르고, 서로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성소수자들에게 이번 서울시의회 점거시위는, 한국사회에서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성소수자혐오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절박한 투쟁이었다. 특히 고립된 상태에서 홀로 고통을 견디고 있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위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반인권단체들의 악의적인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성소수자들의 적극적 행동과 자긍심으로 서울시의회를 뒤엎는 순간이었다.

- 글 장서연

원문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2012.1.5. 기고 "서울학생인권조례 재의요구는 ‘시대착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946§ion=sc5

 

 






 



 

 

 

“질병은 수치가 아니니까”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서연(수애)의 대사이다. 알츠하이머 환자인 서연은 증세 악화로 결국 직장에 사직서를 낸다. 사직 이유를 묻는 상사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하기 전, 질병은 수치가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모습은 당사자로서 느끼는 드러내기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질병에 대한 낙인. 이 장면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올해 HIV/AIDS 활동과 인연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상황에 놓인 HIV 감염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HIV감염과 보험차별에 대한 상담을 하기도 하고, 진로와 취직에 대한 고민을 듣기도 하였다. 한 감염인의 편지가 계기가 되어, HIV 감염인을 격리수용하고 교육, 직업훈련 프로그램에서 배제하는 교도소정책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였고, 생전 처음 경찰에 연행된 것도 부산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제에이즈대회에의 FTA반대집회에서였다.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 처한 감염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질병 자체에 기인한 것보다는 사회적 차별과 낙인에 따른 것들이 많았고, 한국사회에서 감염인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절실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HIV/AIDS란 질병이 처음 알려진지 30년이 지났다. HIV/AIDS가 발견된 초기에는 죽음과 공포의 질병으로 인식되었지만, 현재는 의학적으로 다양한 의약품이 개발되어 적절한 치료법을 유지할 경우 20년 이상의 수명을 건강하게 누릴 수 있는 만성질환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다수의 국가들은 HIV/AIDS를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는 정책을 마련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HIV가 전염성이 낮은 바이러스로 분류되고, 일상생활을 통해 전염되지 않기 때문에 통제중심의 보건정책 보다는 HIV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여 치료의 자발성을 확대하는 방법이 감염예방이라는 공중보건의 목적에도 효과적이라는 인식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한국정부도 올해 ‘에이즈에 관한 유엔고위급회의’에서 유엔에이즈(UNAIDS)의 에이즈대응정책 3Zeros(Zero new infection, Zero AIDS-related deaths, Zero discrimination, 신규감염 제로, 에이즈관련사망 제로, 차별 제로)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4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어떤 차별과 낙인도 없는 환경을 위해 노력할 것, 둘째, HIV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여 대중적 인식을 향상시킬 것, 셋째, 적절한 치료와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 넷째 에이즈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과연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표방하는 인권국가로서의 이미지처럼, 에이즈정책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실천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국정부는 한국사회의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낙인을 줄이고, 감염인 인권 보장과 사회적 지원을 위한 정책과 역할에 소극적이다. 한국은 오히려 최근 날치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그 대표적 독소조항인 의약품의 품목허가와 특허를 연계하는 제도(허가-특허 연계제도)의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보건복지부의 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심각하게 제약하였고, 법무부는 감염인의 색출과 격리수용을 목적으로, 모든 신입수용자를 대상으로 HIV/AIDS 강제검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또한 한국정부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권고를 받아들여 HIV/AIDS를 이유로 한 출입국 규제를 폐지하였다는 대외적 표명과는 달리, 원어민 강사, 내국인 배우자, 예술흥행비자 등 사증 발급이나 외국인 등록 시에 HIV/AIDS검사를 의무화하여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검진 및 출입국 규제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이다.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자,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이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에이즈 관련 인권단체들은 보건복지부 앞에서 “에이즈30년, 그러나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은 거꾸로 간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HIV 감염인들에게는 12월 1일 하루만 추운 것이 아니라 365일이 춥다”는 HIV/AIDS 활동가 윤가브리엘의 외침을 흘려듣지 않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 HIV/AIDS감염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외국과 관련 영역에서는 “PL”이란 표현을 쓴다. "PL"은 “People Living with HIV/AIDS”를 줄인 말로 직역하면, “HIV/AIDS와 함께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HIV/AIDS감염여부가 한 개인의 정체성을 압도하는 듯한 ‘HIV감염인’이나 ‘AIDS환자’라는 표현보다 “PL”이란 용어가 편하고, 감염인의 인권의 문제가 단순히 의료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PL”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낯선 용어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HIV/AIDS감염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사회국가원리

카테고리 없음 | 2011. 11. 11. 21:55
Posted by 장변

우리 헌법은 사회국가원리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헌법의 전문,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 헌법 제31조 내지 제36조), 경제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유도하고 재분배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경제에 관한 조항( 헌법 제119조 제2항 이하) 등과 같이 사회국가원리의 구체화된 여러 표현을 통하여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였다. 사회국가란 한마디로,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헌재 2002.12.18. 2002헌마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