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83 

남성교도소에 갇힌 MTF 트랜스젠더

2007년,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정자체로 꾹꾹 눌러쓴 편지. 남성 교도소에 갇힌 MTF 트랜스젠더 A의 편지였다. A는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법무부, 여성부, 국가인권위원회. 그러나 A에게 돌아온 대답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뿐이었다. 교도소는 A가 사용하던 여성용 속옷을 반입금지하고, 호르몬 치료를 해달라는 A의 요구를 무시했다. A의 사정을 알게 된 다른 수용자들은 A를 모욕하고 괴롭혔다. A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였지만, 교도소는 A를 자살우려자로 분류했을 뿐, A에 대한 처우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A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였다. A가 병원으로 옮겨지고 난 후, A는 성주체성장애(GID)라는 진단을 받고, 다른 교도소로 이송되었으며, 여성용 속옷 반입이 허가되었다.

A가 한 인권단체로 보낸 한 통의 편지로, A의 사연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A를 계기로, 구금시설에 갇힌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의 심각한 인권상황이 드러났다. 한국에는 트랜스젠더 수용자를 위한 관련 규정이나 사회적 논의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감옥인권운동을 해 온 천주교인권위원회,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등 관련 단체들은 A 사건에 함께 대응하기로 하였다.

교도소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소송

2009년 8월, A가 자살시도에 이르기까지 A를 고통 속에 방치한 교도소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트랜스젠더인 A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성정체성에 적합한 의복 및 적절한 의료적 처우를 제공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다.

2010년 10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가 A에게 위자료로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승소판결을 하였다. 담당교도관들이 A의 자해, 자살시도를 방지하기 위한 감시, 감독을 소홀히 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법원은 교도소가 트랜스젠더인 A에 대하여 여성 속옷 반입을 금지하고 적절한 의료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는 원고 측 주장은 기각하였다. A가 입소할 당시부터 성주체성장애를 겪고 있었다거나 교도소 측에서 A가 성주체성장애를 겪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남자 수형자만을 수용하고 있는 교도소에서 여성용 속옷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다른 수용자와의 형평이나 교도소 내 질서 유지 등의 문제가 있어 부득이 거부하게 된 것으로 보이므로 교도소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법원이 A의 고통에 대한 교도소의 책임을 일부나마 인정하였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A가 트랜스젠더로서 자살시도를 할 만큼 고통을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 교도소의 책임을 인정하는데 소극적이었던 점은 아쉽다. 트랜스젠더, 의학적인 진단명인 ‘성주체성장애’는 사회적으로 아직 낯선 개념이다. 비록 A가 입소 전에 의료기관으로부터 진단을 받은 바는 없으나, A가 고통을 호소하며 여성용 의복과 호르몬치료 등을 요구하는데도, 교도소 측은 A의 고통과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용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국가기관의 의무를 게을리 한 것이다. 결국 A가 자살시도를 한 이후에서야, A는 병원에서 성주체성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트랜스젠더(성전환자)는 기왕의 호르몬치료 여부나 성전환수술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과 욕구가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고려되어야 하는데, 1심 법원은 이를 간과하였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외국사례를 찾아봤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이미 여러 가지 사례와 논쟁들이 있었다. 과거에 미국 법원은 수용자들이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주체성장애는 심각한 의료적 지원이 필요하며, 성주체성장애자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주도 하에 정신과 진료가 이루어져야 하고, 만약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 등이 의료적으로 필요하다면, 이러한 의료조치에 대하여 단순히 비용이나 여론 때문에 거절하는 것은 미 연방 수정헌법 제8조의 잔인하고 비정상적인(cruel and unusual) 처벌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하고 있다.

‘구금시설과 트랜스젠더 인권’ 토론회 열려


1심 판결이 선고된 이후인 2011년 4월 15일, 구금시설에 있는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를 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상희 교수는 트랜스젠더의 성정체성 ‘선택’의 자유는 명확하게 헌법에서 보장되는 기본권이라고 하였다. 또 “트랜스젠더가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간의 차이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그에 대하여 어떠한 행위-성전환-로 나아감으로써 그 차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그 자체 자신의 인격적 정체성 내지는 성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며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 --> 자기결정권 --> 인격권 --> 행복추구권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우리 헌법 제10조의 보호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루인 활동가는 “트랜스젠더에게 의료적 조치 지원은 트랜스젠더가 구금시설에서 우울증이나 자살시도와 같은 위험 상황을 예방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내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아울러 의료적 조치 제공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시설(예를 들어, MTF라면 여성구금시설)에 이송될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의료적 요청, 특혜가 아니라 건강권/의료권 개념에 따른 당연한 권리다. 구금시설이 이에 응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의무일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영국의 트랜스젠더 수용자 정책

필자는 외국사례를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도 최근 발표된 영국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2011년 3월, 영국 법무부는 트랜스젠더 수용자에 대한 새로운 지침(The Care and Management of Transsexual Prisoners)을 발표했다. 이 정책은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에 대한 의학적 처우, 교도소 내 배치, 개명(호칭), 신체검사, 복장규정, 물품사용, 안전관리 등에 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지침에 의하면, 교도소는 성주체성장애로 진단받은 수용자들에 대해 만약 이들이 수감되지 않았더라면 NHS(National Health Service, 영국의 공공의료서비스)으로부터 받았을 치료와 동등한 치료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 이는 상담, 성전환수술 전후 관리 및 지속적인 호르몬치료를 포함한다. 만약 수용자가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부터 의학적 치료를 받았었고 지속적인 치료를 요구한다면 교도소 내 성주체성 전문가가 수용자에게 맞는 다른 치료를 권하기 전까지는 이전부터 받던 치료가 지속되어야 한다.

또한 수용자가 자신의 신체 일부분이나 성별과 관련 있는 다른 특징들을 바꿈으로써 성전환을 원하거나, 성전환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경우, 「평등법 2010」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이들이 성전환을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학대를 받아서는 안 된다.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성별에 적합한 의복을 입도록 허용되어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름과 호칭을 사용할 수 있다. 수용자는 성전환을 이유로 개명신청을 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에는 ‘Mr’ ‘Ms’와 같은 호칭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수용시설에 배치할 때는, 법적으로 성전환이 인정된 수용자들은 법적으로 인정된 성별에 따라 배치된다. 법적으로 성전환이 인정되기 전의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도 다른 수용자들과의 위험요소, 전문가 의견, 수용자 본인이 어디에서 가장 안전함을 느끼는지 여부 등을 고려하여 재배치할 수 있다. 배치문제는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법적인 문제이며, 배치를 목적으로 한 신체검사는 금지된다.

구금시설에 있는 트랜스젠더 수용자를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A는 출소한 이후,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직장을 구하고, 안정된 생활을 시작하였다. A는 자신의 사건을 계기로, 다른 수용자들을 위해 구금시설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보호규정이 마련되길 바란다.

한 사회의 인권수준을 가늠하려면 재소자의 인권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재소자의 인권은 침해당하고 억압당하기 쉽다. 재소자 중에서도 사회적 소수자들은 자유의 제약과 함께 소수자에 대한 이해 부족과 차별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한국사회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여 왔다. 특히, 성별이 남성과 여성, 양성으로만 확고하게 구분된 구금시설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수용자의 배치 문제에서부터, 의복문제, 의료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현황이나 실태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구금시설에 수용된 트랜스젠더가 자유의 제약이라는 형벌 이외에 이중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이들의 고통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도 어느 구금시설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트랜스젠더 수용자가 있을 수 있다. 조속히 구금시설에 있는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을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글 장서연 변호사

 

이겼다!

카테고리 없음 | 2011. 4. 20. 16:38
Posted by 장변

-영화 ‘친구사이’ 청소년관람불가 취소소송, 서울고등법원 항소심도 승소!

2011년 4월 20일 오전 10시.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김조광수 감독이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단다. 기쁨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심 헌법재판소의 군형법 제92조 합헌결정이 이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원고의 승소, 상식의 승리였다.

영화 ‘친구사이?’는 20대 게이(남성 동성애자)의 사랑과 커밍아웃을 그린 영화다. 그런데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 영화가 선정성이 높고 청소년의 모방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결정을 하였다. 이 영화를 제작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청년필름’의 대표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김조광수 감독은 영등위의 결정은 동성애를 차별하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그래서 영등위를 상대로 법원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분류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공감이 소송대리를 하였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동성애를 내용으로 한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청소년의 일반적인 지식과 경험으로는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단정할 수 없다. 동성애를 유해한 것으로 취급하여 그에 관한 정보의 생산과 유포를 규제하는 경우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 속하는 성적 자기결정권 및 알 권리, 표현의 자유, 평등권 및 헌법상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감 활동소식] 영화 ‘친구사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분류 취소 판결(1심)
http://www.kpil.org/opboard/viewbody.php?code=publicNormal&page=2&id=62&number=62&keyfield=&keyword=&category=&BoardType=&admin=

그런데 영등위가 항소를 했다. 오늘 판결은 영등위의 항소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었다. 영등위의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새로운 주장을 하였다. 1심의 청소년관람불가 취소 결정이 부모들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상대방 변호사는 “고등학생에 불과한 청소년들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동의 없이 완전히 개인적인 의사에 따라 이 영화의 관람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학부모의 교육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고 측은 청소년관람가 결정이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청소년의 알권리나 이 사건 영화를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영등위의 변호사는 또 ‘바성연’의 조선일보 광고를 증거로 제출하며, 아직 동성애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사회 전반적인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상대방 변호사가 동성애자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일방적인 혐오로 가득 찬 주장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광고를 법원에 증거라고 제출한 것은 실망스러웠다.

원고 측은 전문가의 의견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했다. 천근아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성적 지향에 대한 결정은 청소년기 이전에 생물학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이미 결정되어있을 것이다라는 여러 연구결과에 비추어 본다면 동성애 표현물 자체가 청소년기의 성적 지향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니며 이미 결정되어있던 성적 지향에 영향을 주는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히고 있으며, “동성애에 대한 혐오,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하여 청소년기에 동성애 표현물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단지 이성애적 음란물 싸이트나 표현물들을 19세 이하에서 제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 관련 인터넷 싸이트나 표현물등에도 등급을 정하여 포르노나 음란물에 대해서는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원고 측은 여러 외국사례도 들었다. 외국에서는 초등학생을 포함한 청소년들에게 동성애 문제를 차단, 은폐,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정확한 이해를 위해 사회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 밴쿠버교육청은 2007년 『동성애자 청소년의 부모와 가족을 위한 질문과 답변』이라는 소책자를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로 발간하였다. “어린이와 십대 모두는 자신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책자는 자녀가 동성애자임을 드러내는 과정(coming out process)과 그러한 과정을 준비하는 부모와 가족 구성원들을 위하여 마련되었다. 소책자는 자녀의 성(性)을 문제시한 나머지 “원인” 을 찾는 데만 주력하는 것은 잘못이며, 동성애 또는 이성애에 관하여는 인정되는 원인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고, 초등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교과과정에 가족의 다양성, 성적 지향, 동성애혐오증, 차별 등의 동성애 관련 주제 토론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오늘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은 1심의 판결이 정당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헌법재판소의 군형법 합헌결정에 실망한 사람들,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글 장서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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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 2011. 4. 20. 15:36
Posted by 장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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