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오름 291호에 기고한 글 http://hr-oreum.net/article.php?id=2056

 

[서연의 인권이야기] 내가 녹색당원이 된 이유

‘성장과 개발’ 보다 ‘생명과 생태’를 존중하는 사회를 꿈꾸며

서연 

운전을 하다보면, 도로 위에서 차에 치인 동물의 사체들을 자주 보게 된다. 얼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나는 곧 잊어버리고, 다시 내 속도를 되찾는다.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로드킬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도로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그 길에서>라는 다큐 영화를 보면, 전국적으로 모든 도로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야생동물들이 죽어간다. 그렇게 로드킬을 당한 동물 중에는 지리산 부근 88도로가 고향인 삵 ‘팔팔이’도 있고, 산기슭에서 물을 마시러 강기슭으로 건너가던 너구리 커플, 뱃속에 새끼 7마리를 잉태하고 있던 고라니도 있었다. 그리고 두꺼비 ‘섬’자를 딴 섬진강 부근 국도는 여름철만 되면 두꺼비들의 무덤이 된다.

위 사진:[사진: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 중 '팔팔이'의 생전모습]

이는 한국의 도로밀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한반도 남한에만 고속도로, 지방도로, 민자도로 등등을 포함하여 사방 1제곱킬로미터 면적 안에 1킬로미터 길이만큼의 도로가 있다. 야생동물 중 비교적 행동반경이 좁다는 너구리조차도, 하루에 여러 번씩 도로를 건너야할 정도로 도로밀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녹색연합에 의하면 중복도로 건설로 인해 9조원의 예산이 낭비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도로를 더 늘린단다. 로드킬이 단순히 ‘야생동물 이동통로’ 설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도로건설, 토건 중심의 정책을 전환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녹색당이 창당된다고 했을 때, 내가 주저 없이 가입하게 된 이유이다. 어떤 이들은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와 같은 일들을 더 이상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으로 ‘성장과 개발’ 보다 ‘생명과 생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녹색’과 인권이 만나면?

녹색당의 가치는 좁은 의미의 ‘생태적’ 가치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존중은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 타자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식 등 공동체의식을 더 넓게 확장하는 의미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한 지역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사람의 목숨마저 앗아간 용산참사,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한 마을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빼앗는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강행을 지켜보며, 국가가 우선에 두어야 할 가치를 전환하도록 하는 정치적 노력이 시급함을 느낀다. 녹색당 창당도 그 노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막상 소수정당의 당원이 되고나서 보니, 그동안 진보정당들의 서러움을 비로소 체감하게 된다. 당장 4.11 총선에서 정당 득표 2%가 되지 않으면 정당 등록이 취소된다고 한다. 이른바 진보 언론들도 녹색당이나 진보신당을 외면한다. 창당에서부터 정당 등록 취소기준, 기탁금 및 공보물 발송 비용 등 제도정치 진입장벽이 꽤 높다. 이런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녹색당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트랜스젠더 수용자 처우에 관한 외국사례와 시사점

* 인권오름 249gh 벼리 꼭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hr-oreum.net/article.php?id=1771

2006년 한국에서 한
MTF(male to 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트랜스젠더(trans gender, 성전환자)가 남자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다가 여성용 내의와 호르몬치료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는 자살시도를 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가 자살시도에 이르기까지 교도소 측은 적절한 상담이나 처우, 의료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고, 그녀의 고통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에도 법무부가 2003년에 만든 ‘성전환자 수용자 수용처우에 관한 지침’이 있다. 그런데 이 지침은 ‘성전환자’를, “성전환수술 등으로 남·여 성별이 불분명한 자”로 제한하고 있고, “성전환자 수용자를 독거 수용하라”라는 내용 외에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제12조는 “남성과 여성은 분리하여 수용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고, 성별을 어떻게 결정할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기존에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 양성을 전제로, 출생시 외부성기를 기준으로 결정하여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간의 성별을 결정하는 데는 생물학적 측면 외에도 정신적, 사회·심리학적인 요소 등 다양한 성별결정요소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녀 이분법은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온전히 담보하지 못한다. 즉, 남녀라는 성별로 확고하게 구분된 구금시설에서 트랜스젠더 수용자는 모든 영역에서 배제를 경험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교도소에 입소하면서 어느 수용시설에 배치될 것인지 문제에서부터, 정체성에 맞는 의복이나 화장품 지급, 호르몬치료나 성전환수술의 보장여부, 다른 수용자나 직원들로부터의 괴롭힘이나 성폭력의 위험 등에 직면하게 된다.

미연방법원의 판결, “호르몬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

미국에서는,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처우와 관련하여 이미 여러 가지 논쟁들이 있었다.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도소에서 트랜스젠더 수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단계적 지원으로 1) 성정체성에 맞는 의복의 착용과 적절한 화장의 허용, 2) 심리적 지원, 3) 호르몬 치료, 4) 성전환 수술 등을 들고 있다. 즉, 교도소에서 트랜스젠더 수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지원은 성정체성에 맞는 의복의 착용과 적절한 화장을 허용하는 것이다. 성정체성에 맞는 의복의 착용과 화장은,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특히 중요하기도 하고, 구금시설에서도 가장 쉽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교도소 내에서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이 호르몬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는지에 관한 격심한 논쟁은 여러 건의 소송으로 이어졌다. 과거에 미국 법원들은 수용자들이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일관되게 판결했지만, 최근 미국법원의 경향은 ‘성주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는 심각한 의료적 지원이 필요하며, 성주체성장애자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주도 하에 정신과 진료가 이루어져야 하고, 만약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 등이 의료적으로 필요하다면, 이러한 의료조치에 대하여 단순히 비용이나 여론 때문에 거절하는 것은 미 연방 수정헌법 제8조 잔인하고 비정상적인(cruel and unusual) 처벌금지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하고 있다.

미국의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은 일관되지 못한 정책으로 인하여 소송을 통하여 개별적으로 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미국 교정국의 정책은 유지정책(one of maintenance)을 취하고 있다. 구금 이전에 호르몬 투여를 시작했던 수용자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지 않았던 수용자를 구별하고, 구금되는 동안 성정체성 혼란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한 호르몬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영국 법무부, “트랜스젠더 수용자 정책” 발표

영국 법무부는 한 발 더 나아가, 2011년 3월,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보호 및 관리(The Care and Management of Transsexual Prisoners)’라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은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에 대한 의료적 처우, 교도소 내 배치, 개명(호칭), 신체검사, 복장규정, 물품사용, 안전관리 등에 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침에 의하면, 교도소는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에게 수감되지 않았더라면 NHS(영국 공공의료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로부터 받았을 치료와 동등한 치료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 이는 상담, 성전환수술 전후 관리 및 지속적인 호르몬치료를 포함한다. 만약 수용자가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부터 의학적 치료를 받았었고 지속적인 치료를 요구한다면, 교도소 내 성주체성 전문가가 수용자에게 맞는 다른 치료를 권하기 전까지는 이전부터 받던 치료가 지속되어야 한다. 수용자가 성전환수술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교도소 의료진은 성주체성장애 전문가에게 알릴 의무가 있으며, 평상시에도 성전환수술의 필요여부에 대해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용자가 자신의 신체 일부분이나 성별과 관련 있는 다른 특징들을 바꿈으로써 성전환을 원하거나, 성전환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경우, ‘평등법 2010’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성전환을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학대를 받아서는 안 된다.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성별에 적합한 의복을 입도록 허용되어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름과 호칭을 사용할 수 있다. 수용자는 성전환을 이유로 개명신청을 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에는 ‘Mr’ ‘Ms’와 같은 호칭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수용시설에 배치할 때는, 법적으로 성전환이 인정된 수용자들은 법적으로 인정된 성별에 따라 배치한다. 법적으로 성전환이 인정되기 전의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도 다른 수용자들과의 위험요소, 전문가 의견, 수용자 본인이 어디에서 가장 안전함을 느끼는지 여부 등을 고려하여 재배치할 수 있다. 배치문제는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배치를 목적으로 한 신체검사는 금지된다.

구금시설에 있는 트랜스젠더의 성정체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영국의 정책을 보면, 트랜스젠더 수용자에 대한 처우를 각 상황에 따라 다르게 결정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MTF 트랜스젠더가 수용시설의 배치에 있어, 법적으로 성별변경 전이거나 성전환수술 전이어서 남성 수용시설에 배치되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 여성 수용자로서 대우를 받고 성정체성에 적합한 의복이나 화장이 허용되고, 호르몬치료 등 의료적 처우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트랜스젠더들도 하나의 범주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천차만별이고, 성전환에 대한 욕구나 진행정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트랜스젠더를 성전환수술을 하거나, 성전환수술을 원하는 사람으로 한정하여 생각한다. 이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형화된 선입견이다. 트랜스젠더 중에는 성전환수술이나 호르몬 치료를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수술을 하지 않았거나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트랜스젠더는 성전환수술 여부나 호르몬 치료 여부와 무관하게 스스로 어떠한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이는 구금시설의 트랜스젠더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랜스젠더는 기왕의 호르몬치료 여부나 성전환수술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과 욕구가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트랜스젠더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자기결정권에서 도출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법원도 이미 2006년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면서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하여 헌법상 권리를 인정했다.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은 가능한 인간존엄성에 상응하도록 구금시설 안에서도 자신의 성정체성에 적합한 처우를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 정부는 구금시설에 있는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이 형벌로서의 자유구속 이외에 이중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그 고통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트랜스젠더 수용자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글 장서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