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거나, 로스쿨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행복하지 않다고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2박3일 공감 인권법캠프를 마무리하며 모든 참가자들이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몇몇 참가자들이 공감 변호사들이 행복해보여서 좋았다는 말에, 뭔가 말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 변호사들이 행복하다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공감 변호사들도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윤지영 변호사는 작년 안식월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맡고 있던 소송에서 패소하면 진심으로 변호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었다. 그 판결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달렸었다.
염형국 변호사는 강제입원제도 정신보건법 개정 과정에서 당사자들과 많은 이해관계인들의 다른 입장 차이 때문에 욕도 먹고 비판도 받았다. 박영아 변호사는 새해에 밤을 새워 월성1호기 서면을 작성하고 내면서 월성1호기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농반진반으로 얘기했다.

개인적으로는 공감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기 보다는 감사한 일이다.

나는 의사, 변호사는 고달픈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대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중압감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는 과정도 고통스럽다.

로스쿨에 입학하는 비법학 전공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나의 경험으로는 수험용 법공부는 만2년이면 가능한 시간이라고 조언을 한다. 여기서 만2년은 생계지원을 받으며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수험공부만 한 시간을 말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고, 일주일에 2회정도는 헬스장에 갔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집중적으로 반복적으로 내용들을 입력해야하는 시기다. 법학은 처음 공부할 때가 가장 어렵고, 나도 이것이 내 적성에 맞는지 회의가 들었던 때가 있었다. 사시준비를 했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하면, 헌민형 기본서는 1순환을 빨리 하는 것이 좋다. 이해가 안가더라도 진도를 빼는 것이 좋고, 진도 나가는데는 혼자하는 것보다 스터디가 도움이 된다. 미약하나마 전체 틀을 세우고, 내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이 전체 목차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고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서 앞의 목차를 뜯어서 들고다니며 내가 공부한 내용을 떠올리고 외우려고 노력했었다.

민법은 민법총칙 보다 사례집을 먼저 기본서와 함께 보는 것이 좋은데, (지금은 어떤 교재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난 양창수 교수의 민법입문이 큰 도움이 되었다. 법철학, 법의 논리를 익히기에는 형법총론이 좋다. 형법총론은 로스쿨 들어가기 전에도 한 번 읽어보면 재밌을 수도 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거의 모든 과목을 스터디를 구성해서 참여했는데, 나의 합격과 성적은 스터디원들과 협업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스터디원들이 중요한 내용을 다 찍어줬기 때문에.

위의 조언들은 순전히 나의 경험, 휴학을 하고 오로지 수험공부만 했던 경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로스쿨 학기제에서는 다른 어려움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글은, 변호사시험, 로스쿨 입시와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친구들을 위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울증이 왔을 때는 혼자 극복하려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우울증이 왔을 때는 뇌의 신경물질 분비가 오작동되어서 상태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물어보면, 사시공부하던 시기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합격에 대한 불확실성, 세상과 단절된 외로움 속에서 이런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다시 하라고 하면 끔찍하다. 그런데 내가 그당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주변 사람들은 모른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못하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그런 사람들이 제일 걱정된다.  

내가 우울증 때문에 신경정신과 상담과 처방을 받은 시기가 3번 있는데, 사법연수원 1년차 때, 2009년 2월, 2016년 1월 때였다.
사법연수원 때는 1,2회 정도 상담과 약처방을 받았었는데, 의료보험 적용을 받아서 기록에 남았다. 검찰지원 과정에서 면접 직전에 검찰에서 온 확인전화를 받았다. 학업스트레스 때문이었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검찰 면접에서는 특별히 언급이 없었는데, 아마 3명이 동시에 면접을 보기 때문에 배려차원에서 미리 개인별로 확인한 것이 아닐까 싶고, 당시 별 문제없이 통과하여 검사가 됐었다.

그리고 공감에서 일을 할 때도, 직접 신경정신과에 찾아간 적이 두 번 있다. 2009년 용산참사 철거민 생존자들을 변호할 때 그리고 안식년 직후인 2016년 1월 때였다.

2009년 용산참사 때는,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라는 진실과 여론이, 하루아침에 검찰과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에 의해 전철연의 과격성, 폭력성이 부각되면서 여론과 프레임이 넘어가던 시기다. 전철연이 6개월 전부터 준비했다는 등, 검찰이 언론에 공표한 부정적인 내용들은, 용산참사 당일 체포연행된 철거민들의 진술에서 나왔다. 당시 스무명이 넘게 체포연행된 상태에서 변호인 조력을 받지 못한채로 조사당한 철거민들이 있었다. 당일에 현장에서 주요인물을 파악하고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하루아침에 사회여론이 뒤바뀌는 것을 보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때 의사가 내게 해준 말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2015년은, 2014년 신촌 퀴어퍼레이드부터, 성소수자 인권이슈와 관련된 건건마다 호모포비아들을 마주해야 했던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에서,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과정, 2015년 서울과 대구퀴어퍼레이드 금지통고, 교육부와 여성가족부의 성소수자 삭제 등 몰아치는 한 해를 보내고 번아웃 됐었다. 관련된 일은 쳐다보기도 싫던 시기여서 맡고 있던 혐오표현 심포지엄 실무도 펑크내고 잠수탈 때였다. 근데 내가 우울증이 왔구나 자각한 것은 안식년 직후였다. 사소한 일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애인에게 그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로스쿨에 가고자 하는 후배들을 보면 응원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 고통과 힘든 시기에 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 좋은 뜻과 의지를 가지고 시작해도 그 과정이 결코 호락호락한 시간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법캠프에서 이미지로 인권을 설명하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한 참가자가 "인권은 '소주'다. 왜냐하면 처음엔 쓰고 나중엔 달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단 열매는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인권운동도 그런 것 같다. 고통 속에서 이루어내는 성과들, 작은 승리들이 있기 때문에, 더 큰 보람, 행복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더 붙이면,
요즘 나는 행복한 시기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왜냐하면 맡고 있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안식년 1년을 쉬면서 밀린 일을 털어내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해 결심으로 앞으로는 일주일에 적어도 2회는 칼퇴근 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부디, 좋은 뜻과 의지를 가지고 시작하는 이들 모두가 그 험난한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